조조하사의 Gaming Nexus☆

네이버 블로그의 11년 4월 25일자 포스팅 '[리니지2] 바츠 해방 전쟁 이야기 <1>'입니다. <2> 포스팅과 이어집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심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위정현 편저, 한경사 출판(수정, 170113)」 의 '온라인 게임, 교육과 손잡다'라는 책의 일부를 따온 것입니다. 참고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첫 부분은 말 그대로 '서론' 부분으로, 참고하실 분은 읽으셔도 무방합니다만, 이 글의 주 요지를 보고 싶으신 사람은 3번째 글, 바츠 해방 전쟁의 발발부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입니다. 게임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한번은 이 이야기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가상세계의 혁명

-'리니지2' 바츠 해방 전쟁 이야기

서문

 디지털 스토리텔링(Digital storytelling)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산업 현장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콘텐츠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창작 기술로 이해되고 있다. 컴퓨터 게임, 애니메이션, 디지털 영화, 웹 광고, 사이버 커뮤니티, 웹 에듀테인먼트, 웹 뮤지엄 등은 현재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콘텐츠들이다.

 최근의 연구자들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국제적 표준을 한국에서 개발된 온라인(컴퓨터) 게임에서 추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핵심 콘텐츠이다. 온라인 게임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개념에 가장 정확하게 일치하면서 동시에 가장 활발하게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분야이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세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의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이다. 이후 한국은 발달된 IT 인프라와 반도체, TFT, LCD, 모바일 분야 세계 1위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온라인 게임의 발전을 선도하여 2004년 현재 세계 시장의 31.4%를 장악하고 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까지 서비스되어 'IT 한류(韓流)'라는 현상을 만들어냈으며 현재 '오프라인 게임의 온라인화'라는 세계 게임 산업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량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질적인 측면이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인류의 이야기 예술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게임학(Ludology)의 세계적인 석학 아세스(Espen Aarseth)는 'First person'이란 저서에서 "한국의 다사용자 게임 '리니지'는 게임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만들어낼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게임이라는 장르를 넘어 이제까제 인류사에 존재했던 어떤 이야기 예술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의 이야기를 출현시켰다. 그것은 '1,000시간 이상 지속되며 고조되는 갈등 상황에 스스로 주인공으로 참여함으로써 사회 정의와 인간적인 자유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사용자(독자)'라는 매우 특이한 이야기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본질을 밝혀준다. 프리드리히 쉘러의 말처럼 인류 사회는 인간의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구성되었지만 그 사회에 조화를 부여하는 것은 예술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취향이다. 미래의 인류는 바로 한국의 온라인 게임과 같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공동의 취향을 학습하고 사회 정의와 인간적 자유를 향한 연대감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리니지 2」에 접속하기

 이 같은 MMORPG 가운데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모델로서 주목되는 게임은 「리니지 2」이다. 엔씨소프트사의 이 게임은 '리니지'의 후속편으로 제작된 세계 최초의 풀 3D 온라인 게임으로 2005년 현재 대규모 MMORPG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게임이다. 2005년 3월 22일 현재 「리니지 2」는 북미, 유럽, 중국, 일본, 한국 등 세계 12개국에 206만 명의 사용자와 12만 명의 동시접속자를 가지고 있다. 「리니지」와 「리니지 2」를 합친 현재 사용자 400만 명, 누적 회원 수 1,950만 명으로 이 숫자는 전 세계 온라인 게임 사용자의 50.9%를 차지한다.

 처음 「리니지 2」의 가상현실 속으로 접속한 사용자는 캐릭터 리스트에 아무 것도 없는 가상공간과 만나게 된다. 셀렉션 스크린(Selection Screen)이라고 부르는 여기에서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디자인한다. 이러한 선택에는 종족, 성별, 외모 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 키, 피부색깔 등 다양한 디테일이 포함된다.

 이러한 조형 과정은 사용자들에게 캐릭터와의 강한 감정적 유착을 창출한다. 현실 공간에서 나의 외모와 이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성장 또한 상당 부분 부모와 사회적 조건에 빚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만든 나의 캐릭터는 그 외모와 이름, 그리고 성장 과정까지 어느 하나도 나의 노력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레벨 1의 캐릭터로 태어난 사용자는 종족에 따라 각기 다른 장소에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며 게임 안에 등장하는 NPC(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를 클릭하면 여러 가지 수행 과제인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 퀘스트를 수행하면 경험치와 돈 등을 보상으로 받는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협동하여 사냥을 하면서도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일정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높아져, 캐릭터의 능력이 향상되고 더욱 높은 종류의 아이템을 착용,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의 직업을 보다 전문화하여 선택할 수 있고, 플레이어들의 집단인 혈맹을 창설하여 「군주」가 될 수도 있다.

 혈맹은 「군주」와 일반 혈맹원들로 이루어지며, 「군주」의 SP(스킬 포인트)와 아이템, 돈ㅇ르 지불하여 레벨을 올린다. 혈맹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혈맹 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혈맹원의 최대 인원수도 늘어나며 혈맹간의 전쟁을 할 수 있게 된다. 혈맹 전쟁을 통해 혈맹은 그 세력을 넓힐 수 있으며, 4레벨 이상의 혈맹의 경우에는 성을 차지할 수도 있다. 성을 차지하기 위한 혈맹들의 전쟁이 바로 공성전이다.

 

바츠 해방 전쟁의 발발

 이러한 「리니지 2」세계에서 일어난 많은 스토리들 가운데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제1서버(바츠 서버)에서 2004년 6월에 발발한 '바츠 해방 전쟁'이다. 「리니지 2」에는 32개의 서버(Server)가 있다. 이 가운데 바츠 서버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서버로, 개발사에 대한 사용자들의 항의 시위가 일어나는,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 서버이다. 여기서 일어난 바츠 해방 전쟁은 「리니지 2」에서 발생한 많은 스토리 가운데 현실세계의 일간지에 보도될 만큼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우리는 바츠 해방 전쟁이 「리니지 2」의 세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리니지 2」의 세계는 레벨에 따른 계층적 차별성이 뚜렷하게 제시되는, 철저한 계층 분화의 사회이다. 레벨에 따라 입는 옷과 쓰는 무기 등 아이템이 다르며 출입할 수 있는 지역이 다르다.

 「리니지 2」의 스토리 세계에는 현실 역사의 '민중계층'에 비유될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40레벨 이하의 캐릭터들로 규정되는 이 민중계층은 2003년 11월 25일 현재 전체 「리니지 2」플레이어의 85.9%를 차지한다. 한편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캐릭터이면서 지배혈맹에 소속되어 있는, 현실 역사의 '군사 귀족 계층'에 비유될 수 있는 계층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높은 레벨이 되어 세력이 있는 혈맹에 들어가면 멋진 무기에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성에서 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낮은 레벨의 군소 혈맹원들은 수시로 공격당해 죽고 들판과 음습한 동굴, 무너진 산채에서 혈맹 모임을 가진다. 사냥터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레벨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상충을 가져와 혈맹 전쟁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쟁 혈맹의 혈맹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55레벨 정도가 되어야 하며 DK혈맹과 같은 이름 있는 혈맹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61레벨에서 65레벨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혈맹 전쟁은 이만큼 레벨이 높은 전쟁 혈맹 사람들만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리니지 2」세계에서 대대적인 민중 봉기가 일어난 2004년 6월의 바츠 해방 전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바츠 해방 전쟁은 「리니지 2」세계를 근본적으로 동요시켰다. 바츠 해방 전쟁은 위협하면 굴복하고 때리면 죽는 민중들이 권력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중의 고조되는 열광은 시스템 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승리들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승리들은 거칠고 원초적인 물리력이 지배하던 크라토스(Kratos) 세계에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 이념인 에토스(Ethos)를 출현시켰다. 이후의 「리니지 2」세계에서는 어떤 권력도 이 같은 에토스의 전제 없이는 피지배계층의 복종 내지 권력에 대한 묵인을 얻어낼 수 없다는 진리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바츠 해방 전쟁의 발발에는 두 가지 경제적 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 첫 번째 요인은 10%에서 15%로 바뀐 2004년 2월 16일의 세율 인상이었다. 세율이란 성을 차지한 지배혈맹과 개발회사가 상점에서 거래되는 모든 물품대금의 일정 비율을 나누어 갖는 것을 말한다. 높은 레벨의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물품을 다른 사용자들과 직거래한다. 이에 반해 상점에서 무기와 옷, 마법방어를 위한 장신구, 각종 물약, 각종 마법서를 사야 하는 40레벨 이하 사용자들에게는 세율 인상은 생계를 위협하는 변화였고, 이러한 불만은 세금을 징수하는 지배혈맹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해방 전쟁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두 번째 요인은 극에 달한 정치적 압제였다. 바츠 서버에는 1천 개가 넘는 혈맹들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쟁혈'이라 불리는 전쟁 혈맹과 '친목혈'이라 불리는 사교 혈맹의 경계는 매우 유동적이다. 쟁혈 내부에도 사교 활동이 있고 친목혈도 다른 혈맹에게 전쟁을 선포하면 전쟁혈이 되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리니지 2」세계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전쟁혈이다.

 전쟁혈들은 다른 혈맹보다 더 레벨이 높고, 더 오랜 시간 활발히 접속하며, 더 PvP 전투(플레이어 간의 대인전)에 능한 혈맹원들을 영입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이러한 세력 경쟁에서 승리한 혈맹이 지배 혈맹이 된다. 때때로 최강의 조직을 구축한 거대 지배 혈맹의 「군주」는 다른 유력 혈맹들과 단합하여 공포와 전율로 얼룩진 철권통치를 구현할 수도 있다. 바츠 서버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지배 혈맹의 철권통치였다.

 2003년 7월 6일 오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 직후부터 바츠 서버를 지배해온 것은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 일명 DK) 혈맹이었다. 이미 「리니지 1」에서부터 활동하여 조직을 정비한 상태에서 「리니지 2」로 넘어온 DK 혈맹은 가장 먼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혈맹원들을 규합한다. 그 뒤 DK 혈맹은 「리니지 2」의 신화적 고대 세계에서 집단으로 구현되는 인간 의지의 강렬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들은 '통제령'을 통해 좋은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사냥터들을 봉쇄하여 다른 사용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나아가 '척살령'을 발동하여 피의 독재를 전개하면서 자신이 독점한 사냥터에서 '오토'라고 불리는 자동 매크로 프로그램 사냥을 통해 24시간 아덴(리니지 세계의 통화)을 벌어들였다. 또 그때그때 유력한 다른 혈맹들과 적절히 제휴함으로써 대항 혈맹들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분쇄하였다.

 게임 사냥터 통제는 리니지 1에서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리니지 1에서 사냥터 통제를 통한 이윤 독점을 학습한 DK 혈맹은 일찍부터 '통제'와 '오토'를 은밀히 행해왔다. 그러나 2004년 3월 거대 3혈맹 단결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확인한 DK 혈맹은 이러한 '통제'와 '오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여기에 반항하는 사용자들을 살해하는 '척살'을 확대했다.

 이와 같은 권력의 횡포, 아무런 가치 이념도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물리력의 발현은 일반 민중으로 하여금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했다. 이것이 모든 세금 인상에 따른 민중계층의 광범위한 불만과 결합되면서 마침내 바츠 해방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자유의 깃발 아래서 죽다

 바츠 해방 전쟁의 서전은 2004년 5월 9일 붉은 혁명 혈맹이 DK 혈맹 군대가 방어하는 기란성을 점령하고 '세율 0%'를 선언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기적 같은 승리는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층 민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하여 단독으로 DK 혈맹에 전쟁을 선포했다가 무참하게 진압당한 바 있던 더킹 혈맹, 순수한 마법사들만의 혈맹인 해리포터 혈맹, 수원성 혈맹, 하드락 혈맹, 리벤지 혈맹 등 지배 혈맹은 아니지만 상당한 세력과 힘을 가지고 있던 혈맹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들이 '바츠동맹군'을 결성하고 '반3혈(反三血)'의 기치를 들자 민중들은 하나 둘 그 옆에 모여들어 자발적으로 이들의 방패막이가 되기 시작햇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 사용자들은 DK 혈맹을 중심으로 한 3혈연합군의 '화살받이'가 되어 무수히 죽어갔다. 민중계층이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 방법은 인해전술이었다. 버프와 스킬의 화려한 효과음과 함께 일방적으로 상대를 도륙해가는 DK 혈맹 전사의 모습과 수십 명씩 낙엽처럼 죽어가는 일반 사용자들의 모습은 고대적 파토스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많은 사람들의 정의감을 자극했다. 반3혈 측의 절박한 호소문이 인터넷에 오르자 비슷한 폭압에 시달리던 다른 서버의 사용자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버리고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바츠 서버로 밀려 들어왔던 것이다. 이들은 바츠 서버에서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기에 이들의 캐릭터는 형편없는 저레벨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레벨 캐릭터로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혁명의 상퀼로드(긴바지를 입는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서버 사용자들의 참전으로 인해 바츠 서버가 만성적인 접속 장애에 시달리던 이 시기에는 많은 호소문들이 나타났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바츠 동맹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 연합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읻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 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겸댕이대왕 <호소문 - 전 서버 유저들이여 궐기하라> (2004.6.16)

 

 내복단의 주류는 하루 이들 정도 육성한 레벨 10 전후의 캐릭터이다. 뼈단검을 든 이들의 공격력은 5~10포인트(한번 공격할 때 상대가 입는 데미지)이다. 이들이 상대하는 DK 혈맹원들은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고수로서 이들의 공격력은 한번 시전 시 1,000~1,300포인트에 이른다. 공격 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이는 어떤 전술로도 상대가 될 수 없는 차이였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에서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은 고립된 개인의 상상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뛰어넘는 집합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을 출현시킨다. 이것은 마치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낮은 차원의 지능을 갖지만 더듬인를 병렬로 연결한 그 집단의 지능은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최적의 행위와 최적의 해답을 찾아내는 이치와 같다.

 내복단들이 찾아낸 최적의 전술은 DK 혈맹의 전투부대의 측후방으로 돌아가 가장 취약한 힐러(치유술사)를 '모탈 블로우'라는 스킬로 100여 명이 같이 찌르는 방법이었다. 내복단 한 사람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적의 힐러에게 대략 40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100명의 화력은 4,000포인트(40x100)에 이르며 한꺼번에 4,000포인트의 체력이 감소한 힐러는 손쓸 겨를도 없이 전사하게 된다. 이렇게 힐러가 전사하면 버프(공격 및 방어 능력의 일시적 증강)와 힐(데미지를 입은 체력의 회복)을 받지 못한 DK전투부대는 중심을 잃고 그 뒤에 달려드는 내복단들에 의해 각개 격파되어 죽어갔다.

 「리니지 2」의 채팅창은 띄어쓰기를 포함해 24자를 치면 꽉 차는 한 줄이다. 또 현실적으로 동일한 작전 행동을 할 수 있는 단위는 9명에 불과하다. 내복단들은 이런 제한된 의사소통 환경에서 제한된 수단을 이용해 수백, 수천 명에게 작전 명령을 내리고 반응하면서 현실의 전투 군단처럼 신속하게 기동했다. 그러면서 적에 대한 기만, 공포감의 조성, 일사불란한 이동과 과감한 종심돌격, 때로는 독창적인 전술행동을 실현했다. 이러한 기동전의 놀라운 모습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의 집단 지능이 얼마나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준 실례였다.

 이러한 집단 지능은 단순히 전투에 그치지 않았다. 레비(Pierre Levy)의 지적처럼 집단 지능은 개체적 차원의 사황을 연계시켜 보다 고귀하고 상승적인 가치를 생산해낸다. 이 시기 「리니지 2」사용자들의 가슴에 발생한 의분과 정열, 정의를 향한 열망은 단순한 놀이로서의 게임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물론 게임의 데이터베이스 위를 이동하는 사용자들의 움직임은 가상적이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다운받은 프로그램 속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체험이 사용자의 인생이듯 가상공간의 체험도 사용자의 인생인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이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적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럽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그러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온라인 게임은 가상현실의 세계입니다. 자신의 캐릭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이란 걸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임이지만 게임도 하나의 가상현실이고 그곳에도 정의가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트릭스 영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매트릭스는 네오라는 영웅에 열광하는 것이지만 「리니지 2」는 자신의 캐릭이  「리니지 2」라는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과거 저는 리니지 1에서 아주 작은 혈의 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소한 문제로 당시 거대 혈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했지만 저는 아무 말 없이 그 쪽 군주에게 정식 혈전 요청을 하였습니다. 질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학살당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혈원들의 한번 싸워보자는 그 패기와 용기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비굴해지기 싫었습니다. 전 묵묵히, 제 장비를 긴급처분하여 혈웓늘에게 물약을 지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가보았지요. 일방적인 학살이었습니다. 하지만 혈원들은 단 한 명도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싸웠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로하더군요.

 전 아직도 그 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 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비록 제 자신 한 명은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어떠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리니지 2」게임포 게시판 호소문의 세 번째 댓글(2004.6.17)

 

 이처럼 내복단들은 「리니지 2」라는 가상현실을 현실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동지애'라는 고귀한 가치에 연대하는, 현실보다 더 숭고하고 더 인간화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바츠 해방 전쟁에서 내복단이 만들어낸 에토스, 윤리적 가치 이념은 온라인 게임과 같은 현실의 가상현실화가 더 높은 단계의 인간화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가상(Virtuality)은 단순히 '실물처럼 보이는 거짓 형상'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눈앞에 구체적으로 현시한 것이다.

 

[리니지2]바츠 해방 전쟁 이야기<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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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감명깊게 봤던 책 중 하나.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이야기 하나.

이브 온라인의 드론랜드 전쟁 이야기와 함께 게임 내 2대 서사로 소개하곤 하는 바츠 해방 전쟁 이야기입니다.(17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