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하사의 Gaming Nexus☆

네이버 블로그의 14년 4월 25일자 '[리니지2] 바츠 해방 전쟁 이야기 <2> 포스팅입니다. 씁쓸한 뒷 이야기.


스크롤의 압박이 심할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위정현 편저, 한경사 출판(수정, 170113)」의 '온라인 게임, 교육과 손잡다'라는 책의 일부를 따온 것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쓰면 지루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2편으로 나누어 써봅니다.

 

혁명이 태양처럼 빛나던 날

 2004년 6월의 대접전 동안 DK 혈맹은 어떤 여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했다. 내복단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바츠 서버로 밀려들었으며 5개성을 중심으로 한 주요 전쟁터는 양측의 시체로 뒤덮였다.

 7월에 접어들자 바츠동맹군(혁명군)의 전열은 더욱 강고해졌다. 붉은 혁명 혈맹과 리벤지 혈맹을 중심으로 한 32개 전쟁 혈맹이 '바츠 해방'의 깃발 아래 집결했고 무수한 내복단들이 이들의 외곽을 수호했다. DK연합군은 야전에서 패퇴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강철같은 DK연합군 5개 아성 가운데 최초로 오렌성이 함락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 서버 최강의 전사인 DK연합군의 아키러스가 순수한 저레벨의 내복단들과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다.

 급기야 6월 28일 3혈 동맹의 주축이며 DK 혈맹 다음으로 큰 거대혈맹이었던 제네시스 혈맹이 사냥터에서의 사소한 충돌을 빌미로 DK 혈맹과 결별하고 바츠 혁명군에 투항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당황한 DK 혈맹은 급히 정(精) 혈맹과 위너스 혈맹을 회유하여 4혈 동맹을 결성했지만 지배연합의 전열은 크게 흔들린 뒤였다.

 그리하여 7월 17일 바츠 해방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아덴 공성전이 벌어졌다. 이 시기 바츠동맹군은 40개 혈맹에 이르렀으며 오렌성을 점령한 상태였다. 리니지 월드의 중북부에 자리잡은 오렌성은 비록 궁벽한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60레벨의 엘프족 전사가 윈드 서커의 버프를 받고 달리면 10분 안에 사냥꾼 마을을 거쳐 수도 아덴성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시 바츠 동맹군은 7인 지휘관의 엉성한 집단 지도 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지휘관들은 오렌성 성주이자 리벤지 혈맹의 총군주 '나리타', 붉은 혁명 혈맹의 총군주 '눈물을감추고', 해리포터 혈맹의 총군주 '박셩만만쉐', 더킹 혈맹의 총군주 '혜원낭자', 수원성 혈맹의 총군주 '칼데스마', 하드락 혈맹의 총군주 '엘븐백기사', 그리고 가장 나중에 합류하여 바츠동맹군 사이에 묘한 긴장을 감돌게 하고 있던 제네시스 혈맹의 총군주 '칼리츠버그'였다.

 이토록 많은 혈맹이 집결했지만 바츠동맹군은 아직도 수적으로 DK연합군에 비해 열세였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바츠 서버의 독특한 정치적 정세로부터 비롯된다. 바츠 해방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현실적으로 DK연합에 가입하거나 양해를 얻지 않고서는 자신의 캐릭터를 52레벨 이상 육성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52 이상의 레벨 업을 위해 꼭 들어가야 하는 사냥터를 DK 연합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파편화된 사용자들은 물질적 안락과 사회 정의 사이에서 흔히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그 결과 전쟁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고레벨 사용자들은 이 시기까지도 DK연합에 속해 있었다.

 이렇듯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DK연합군 전사들은 DK 혈맹의 총군주이자 지배4혈의 총군인 'shadow여솔'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shadow여솔' 아래에도 오렌 혈맹 전쟁의 경험으로 닦이고 닦인 백전노장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의 기사단 혈맹의 총군주 '지존구주', 위너스 혈맹의 총군주 '푸른전사', 정 혈맹의 총군주 '만월의폭군'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츠동맹군이 대승을 거둔 아덴 공성전은 기만전술의 승리였다. 그토록 많은 내복단들이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바츠동맹군은 실제 전력에서 DK연합군보다 우위에 있지 못했다. 불리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이 전투에서 바츠동맹군 수뇌부는 기만전술을 사용했다.

 기만전술이란 위장과 은폐의 기획 의도를 가진 군사 행동을 말한다. 대병력이 일정 기간 적을 속이기 위한 양동작전에 투입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작전은 없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는 기만전술이 계획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하면서 지휘관은 책략을 동원하기보다 쌍방 전투력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오로지 필연성만을 고려하는 '엄숙한 열의'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바츠동맹군의 승리는 기적이었다. 수많은 내복단 가운데 첩자가 있어서 채팅창의 귓속말에 단 한 줄만 입력했다면 발각될 수 있었을 기만전술이 두 번이나 성공했다. 한 번도 서로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내복단 동지'들은 현실 공간보다 더 철저한 도덕성을 보여주었다.

 바츠 동맹군의 기만전술은 공성 등록부터 시작되었다. 「리니지 2」의 게임 규칙에 의하면 양군은 공성 시작 24시간 전 공격할 성으로 가서 수성 등록과 공성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 마감 시간 10분 전, 제네시스 혈맹을 제외한 바츠 동맹의 모든 혈맹들은 오렌성에 수성 등록을 했으며 제네시스 혈맹만이 아덴성에 공성 등록을 하고 있었다. 바츠동맹군은 누가 봐도 DK연합군의 탈환전에 대비하여 오렌성 방어에 전념한 것처럼 보였다.

 등록 마감 시간 8분 전, 제네시스 혈맹마저 공성 등록을 취소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에 DK연합군은 아덴성 수성 등록을 취소하고 오렌성으로 이동하는 한편 바츠동맹군의 위치를 맹렬하게 찾았다. 이 시간 사라진 제네시스 혈맹과 바츠동맹군 본대는 사냥꾼 마을 근처에 매복하고 있다가 DK연합군의 이동 정보를 받자 즉시 아덴성 마을로 달려갔다.

 등록 마감 3분 전, 바츠 동맹군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DK연합군은 할 수 없이 오렌성에 공성 신청을 했다. 같은 시간 바츠동맹군은 아덴 공성에 26개 혈맹이 신청하는 데 성공한다. 이 때 아덴성에 수성등록을 한 것은 DK의 1개 라인혈맹에 불과했다. 양동작전의 기만전술로 바츠동맹군은 공성에 참여할 수 있는 병력에서 우세를 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7월 17일 오후 비교적 공성이 쉬울 것이라던 바츠동맹군의 예상은 빗나갔다. DK연합군은 오후 7시부터 아덴성 주위에 끝없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엄청난 숫자로 대오를 정비하고 전략적 요충지마다 바츠동맹군의 진격을 봉쇄하기 위한 요격진지를 구축했다.

 숙련된 DK연합군들은 성 입구에 중간에 칼과 단검, 창을 든 격수 부대를 배치하고 양 옆으로 넓게 궁수 부대를 포진시킨 학익진(鶴翼陣)을 구축했다. 이것은 성문으로 돌진해오는 바츠동맹군을 일점사(一點射)로 저지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진법이었다.

 8시. 결전이 시작되자 최전선에 DK연합군의 맹장 '아키러스'가 이끄는 '전 서버 최강의 전투 부대' 아키러스 파티(9명)가 나타났다. 아키러스 파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츠동맹군 3개 파티를 전멸시키고 바츠동맹군의 최전선 진지를 파괴했다. 전력의 우열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났다. 오직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만이 바츠동맹군을 버티게 만들었다.

 9시. 무수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바츠동맹군 측은 아직 진지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공성군 측이 1시간이 지나도 진지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전황이다. 공성군 측이 전사했을 때 진지가 있으면 그 진지에서 부활할 수 있지만 진지가 없으면 두 번째로 먼 마을에서 부활하여 10여분을 달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츠동맹군의 두 번째 기만전술이 시작되었다.

 9시 10분. 바츠동맹군은 부서진 진지를 뒤로 하고 산지사방으로 패주하기 시작했다. DK연합군의 눈에 이와 같은 패주는 자연스럽게 보였다. 상대는 총사령관조차 정해지지 않은,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혈맹들의 엉성한 결합체였고 내복만 달랑 걸친 오합지졸들의 군대였다. DK연합군의 맹공에 1시간동안 버틴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9시 20분. 승기를 잡은 DK연합군은 진군했다. 패주는 했지만 적의 주력이 완전히 분쇄된 것은 아니었다. 연합군 수뇌부는 결정적인 승리를 획득하기 위해 아덴성 주변의 전장을 떠나 오렌성으로의 추격전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대비해 레드 군단 궁수부대와 화이트 군단 궁수부대를 잔류시켰다.

 그러나 이때 바츠동맹군은 패주한 것이 아니었다. 패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만전술이었던 것이다. 바츠동맹군은 거의 흩어지지 않고 전장 외곽에 집결하여 매복하고 있었다.

 오렌성으로 진군한 DK연합의 대군은 리벤지 혈맹을 비롯한 소부대만이 지키고 있는 오렌성을 맹공했다. 외성문 바깥쪽에 공성진지를 구축하고 공성골렘(성문을 부수기 위한 공성무기)을 뽑아 눈 깜짝할 사이에 외성문을 부수어 버렸다. 이 공세는 외성문 안쪽에 압살롬 진형(원형 일점사 진형)을 구축하고 있던 리벤지 혈맹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리벤지 혈맹은 총군주 '나리타'와 라인군주 '야적', '어시장' 등 지휘부가 직접 나서서 뚫린 외성문 안쪽에서 절망적인 심정으로 이 공세를 방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DK연합군의 공격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아덴성에서의 급전이 오렌성 공성부대로 날아든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아덴성의 주전장에서는 DK연합군의 주전력이 이동하자 바츠동맹군이 즉각 다시 기동했다. 먼저 칼리츠버그의 진두지휘 아래 아수라처럼 분전한 제네시스 혈맹이 화이트 군단 궁수부대를 격파했다. 제네시스 혈맹은 한 라인을 보내 진지를 구축하는 한 편 나머지 전병력으로 전장을 가로질러 레드 군단 궁수부대의 배후를 엄습했다. 레드 군단 궁수부대는 앞뒤로 포위되어 전멸해버렸다.
 곧이어 바츠동맹군은 공성골렘을 소환했고 프로핏의 버프를 모두 받은 공성골렘은 불과 몇 분만에 외성문을 파괴하고 내성문마저 부수어 버렸다. 아덴성 내로 쇄도해들어간 바츠동맹군은 망루와 성벽을 지키던 위저드(공격수 마법사) 부대를 격파하고 내성으로 뛰어들었다. 내성을 지키던 DK골드라인 혈맹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원 사살되었다. 이 전투에서 지배4혈의 총군 'shadow여솔'도 전사했다.

 DK연합군의 오렌성 공성부대에 날아든 것은 이런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들은 다급한 나머지 오렌성에서 아덴성 마을로 텔레포트하여 전장으로 직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한 것은 내복단의 결사적인 저항이었다. 인간 바리케이트를 형성한 내복단들은 화살받이가 되어 죽으면서 자신들의 시체로 마을 입구를 겹겹이 막았다. 시체 때문에 걷기조차 어려워진 DK연합군은 바츠동맹군 궁수부대와 위저드 부대의 집중 포화를 받고 스러져갔다. DK연합군이 전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이 제네시스 혈맹의 칼리츠버그 총군주가 각인실에서 성의 점령을 각인하는데 성공했다.

 이 날 PC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사용자들이 목격되었고 게임 안에서는 아덴성의 메인 홀에서 내복단들이 춤을 추었다. 이 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되었다. 이 날 혁명은 모든 리니지 월드에 태양처럼 빛났다.

 

혁명군의 분열과 패전

 아덴 공성전은 바츠 해방 전쟁의 분수령이었다. 「리니지 2」월드의 정치적 중심지인 아덴성을 점령한 것을 기점으로 바츠동맹군은 빠른 속도로 분열하며 타락해갔다.

 분열의 씨앗은 전승(戰勝)의 과실을 누가 가질 것인가였다. 예컨대 아덴 공성전의 성공으로 리벤지 혈맹은 오렌성을 차지했고 제네시스 혈맹은 아덴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바츠동맹군의 선봉을 맡아 많은 희생을 치렀던 붉은 혁명 혈맹은 얻은 것이 없었다. 아덴성의 각인을 함으로써 아덴성을 소유하게 된 제네시스 혈맹은 바츠동맹군이라고는 하지만 불과 3주 전까지 지배연합군의 일원이었다.

 제네시스 혈맹은 제네시스 혈맹대로 가장 병력이 많은 만큼 고생은 그들이 다 했는데 묘한 입장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는 억울함이 있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는 납득해도 심정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만들이 각 혈맹마다 쌓여가기 시작했다.

 DK연합군이 아덴성에 이어 기란성마저 빼앗기고 오만의 탑 9층으로 퇴각하자 승리의 전리품을 둘러싼 각 혈맹들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 무렵 바츠동맹군 소속의 혈맹들이 약칭 '용던'이라 불리는 안타라스의 동굴에서 부분적인 통제와 오토 행위를 한다는 비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각 혈맹들의 총군주들은 용던이라는 사냥터에 독점구역을 확보해줌으로써 성의 소유를 둘러싼 혈맹원들의 불만을 무마하려 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츠동맹군의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애초에 바츠동맹군이 외쳤던 '정의와 자유'의 구호는 매우 지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의 정의는 일반 사용자들을 죽이고 오토 프로그램을 돌리며 게임의 룰을 일탈한 지배혈맹에 대한 정의였다. 또 이때의 자유는 어떤 사냥터이든지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으로서 갈 수 있고 또 사냥할 수 있다는 의미의 자유였다.

 그런 대의명분을 내세웠던 바츠동맹군이 지배혈맹과 똑같은 통제와 오토, 척살을 행했다는 것은 그들을 지지해온 일반 사용자들의 신뢰를 뿌리째 배신하는 것이었다. 바츠동맹군의 전쟁 혈맹들은 각기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고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아직 완전히 섬멸되지 않은 적 앞에서 자중지란에 빠지고 말았다. 수세에 몰려 있던 DK연합군은 이 때 새로 패치된 '오만의 탑'에 숨어 은인자중 힘을 기르고 있었다.

 적의 무서운 잠재력을 외면한 바츠동맹군은 승리에 도취해 사분오열되었다. 붉은 혁명 혈맹은 이제까지의 리벤지 혈맹과 전쟁에 돌입했으며 곧이어 제네시스 혈맹과도 전면전에 들어갔다. 그 결과 수적으로 열세에 몰린 붉은 혁명 혈맹은 과거의 주적이었던 DK연합군과 제휴함으로써 바츠 해방에 참전한 많은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4혈도 나쁘지만 반4혈도 나쁘다'는 공감대가 바츠 서버에 유포되면서 아덴 공성전까지의 단합은 무너져갔다. 내복단들 역시 내복단을 빙자한 강도들, 즉 '제조'들이 등장하면서 도덕성을 믿을 수 없는 경계와 의혹의 대상이 되어갔다.

 바츠동맹군의 타락과 분열은 전세의 역전을 가져왔다. DK연합군은 빼앗겼던 성들을 조금씩 모두 탈환했으며 혁명군의 공성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그리하여 해가 바뀐 2005년 1월 27일 DK혈맹은 다시 무제한 척살령을 발동했고 「리니지 2」의 일반 사용자들은 바츠 해방의 꿈이 비참하게 좌절되었음을 확인해야 했다.

 

숭고의 체험과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

 2005년 6월 현재 바츠 서버는 해방 전쟁 이전의 참상으로 되돌아왔다. 사냥터에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하루 저녁에 700명이 넘는 사용자들이 지배혈맹에 의해 살해되고, 산발적인 소요가 일어나고, 소요의 결과 DK연합군이 사냥터의 오토 행위를 통해 만들어내는 바츠 서버의 아덴 가격은 폭등한다.

 그러나 바츠 해바 전쟁 스토리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은 미약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하는 게임이 바츠 해방 전쟁 절정기의 그 숭고한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체,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살아 있는 물건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숭고란 뭔가 고귀하고 성스럽고 영웅적인 것이 자신의 눈앞에 현전(現前)하고 있다는 충격의 체험이다. 그것은 묘사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천지 창조의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리니지 2」의 스토리는 매일 매일 놀랍고 비일상적이며 충격적인 순간, 묘사 불가능한 것이 일어나는 순간의 미학, 숭고의 미학에 의해 지배된다.

 2005년 5월의 어느 날, 사용자들은 아직도 저항하고 있는 극소수 혈맹들 가운데 한 파티가 용의 계곡에서 안타라스의 동굴로 출정하는 것을 본다. 시간은 이미 9시가 넘은 아침이다. 그 파티의 주인공들은 모두 밤을 새웠다. 수백 명의 DK 혈맹원과 싸운 간밤의 싸움에서 많은 혈맹원들의 캐릭터가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는 봉인 상태에 이르렀다.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D급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수한 죽음으로 30 이상 레벨 다운이 되어 공격력이 무의미할 정도로 낮은 무기를 들고, 옥쇄할 수밖에 없는 전쟁터로 묵묵히 떠나가는 것이다.

 함께 파티 사냥을 하며 성장했던 친구들은 대개 현실과 타협했다. 친구들은 저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친목혈'을 꾸려 군주가 되고 게임 안에서 편안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은 사냥터도 없이 풍찬노숙하며 사방에서 공격받고 악명을 뒤집어쓴다. 외로운 나머지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쉽게 정을 주었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외로운 전사들이 외롭게 전쟁터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리니지 2」의 사용자들만이 이해하고 감지할 수 있는 '숭고'이다. 이러한 순간 「리니지 2」의 스토리는 위엄을 갖춘 희생자들, 최후에 승리하는 패배자들, 타락한 현실에 대해 선(善)을 주장하는 무법자들의 형이상학적이고 영웅적인 진실을 전달한다.

 일찍이 조셉 켑벨은 많은 스토리에서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영웅이 평범한 인간 세상으로 귀환하는 데 어려움이 수반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영웅은 평범한 세계에서 '낯설고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 통과제의의 성격을 갖는 고통스런 체험을 한다. 그리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그 세계로부터 어떤 물질적, 정신적 전리품을 들고 다시 평범한 세계로 돌아와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해준다.

 그러나 이 같은 '분리-통과제의-귀환(Separation-Initiation-Return)'의 구도가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신비하고 정복되지 않는 힘과 불멸하는 우주의 그림자를 맛본 영웅은 삶을 너무 많이 보고 너무 깊이 본다. 그래서 그는 안일무사한 생활인들의 세계, 평범한 인간들의 세계로 돌아올 수가 없는 것이다.

 바츠 해방 전쟁의 스토리를 체험한 상당수의 「리니지 2」 사용자들은 바로 이와 같은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이다. 그 전쟁은 현실 시간으로는 불과 12달이었지만 30분이 하루인 「리니지 2」의 가상현실에서는 무려 48년 동안 계속되었다. 서버를 초월하여 모든 「리니지 2」 사용자들이 숨을 죽이고 전쟁의 추이를 관찰했으며 그 고귀한 희생들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 허무한 결말은 사용자들 사이에 절망과 냉소주의를 유포시켰다.

 온라인 게임 스토리만이 줄 수 있는 이 같은 서사적 감동과 사상적 깊이를 체험한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들은 '폐인'이라는 조롱을 웃어넘기며 매일 매일 온라인 게임이 만든 매트릭스로 들어간다. 이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이 어떻게 현실로 돌아와 세계를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융합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깊이 고려해야 할 지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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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 최초의 게임교양서에 소개된 바츠 해방 전쟁의 뒷 이야기(170113)


온라인 게임, 교육과 손잡다라는 저 책이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최초로 읽었던 게임 교양서였네요. 어린 마음에 기대하고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보기도 했었는데,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던 쓰라린 기억이 남아 있는 책입니다 ㅋㅋㅋ


지금의 국정 농단 사태에 대처하는 자세와도 비교해볼만한 가치가 있어보이죠?
촛불은 현 정권 탄핵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겁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온라인의 뼈아픈 역사가 이렇게 살아있으니까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길게 보고 공존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국정농단 초창기에는 '이런 온라인 상의 경험도 한 몫 해서' 이번 사태를 한 발 더 효과적으로, 유연하게 잘 대처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는 건 이젠 안 비밀